음식

네스프레소, 시물라시옹의 세계가 만들어낸 고품격 커피의 허상

soosound 2013. 2. 23. 14:14

어머니는 가베 애호가다. 타 먹는 커피 시절부터 어머니는 커피:설탕:프림의 황금비율을 간직한 지인들 사이에서 이름난 Madam이었다. 지금처럼 원두커피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90년대 초부터 21세기가 시작되던 때까지, 어머니는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 원두코너의 VIP 고객이었다. 2주에 한번 꼴로 원두를 구입했고, 새로운 원두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어머니에게 안내전화가 왔다. 수많은 원두 중, 어머니가 애정하던 원두는 하와이언 코나였다.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는 가베를 즐기신다. 어머니의 아침은 가베로 시작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이제 원두를 사서 내리는 것보다, 간편한 캡슐 원두를 즐긴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집에 있는 기계가 네스프레소인 까닭에 네스프레소 캡슐을 사서 드시는데, 어제는 어쩌다 내가 캡슐을 주문하게 되었다.


피렌체 거리 멀티숍 코인, 이탈리아(출처:구글지도)


이탈리아 여행 갔을 때, 피렌체에서 Andrea Palombini 에서 남성 와이셔츠를 구입했는데, 그 때, 직원이 간편히 세금환급(Tax Refund)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옷가게 근처 Coin이란 멀티플렉스숍에서 받을 수 있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네스프레소 매장을 만나게 됐다. 나는 네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지만, 어머니에게 사드릴 요량으로 숍에서 2012년 리미티드 에디션인 Trio Pack Naora를 샀다. 세 줄에 12.9 유로였으니, 리미티드임에도 한 줄에 6천원 가량이다. 네스프레소가 한 줄에 10개 캡슐이 들어있으니, 캡슐 하나당 600원인 꼴이다.


네스프레소 리미티드 에디션 Naora 3팩 묶음 가격표 영수증 ⓒ soo_sound



그러나 어제 주문을 하기 위해, 네스프레소 공식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가장 싼 캡슐이 개당, 825원이었다. 비싸도 너무 비싸다. 조금 더 알아보니, 구매대행이라든지, 독일에서 배송대행을 해서 웰콤팩을 구입한다든지 다른 사람들도 싸게 사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영국에 있는 지인에게 문의를 하니, 그곳에서도 가격이 한 줄에 3파운드, 즉 6천원 꼴로, 이탈리아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물론 영국은 우편료가 비싸서, 개인이 해외배송을 하면 결국 그 값이 그 값이라 포기했다. 


독일 구매대행을 할까 생각하다, 유로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 어머니가 당장에 필요로 하셔서, 결국 공식홈페이지에서 주문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리지니오 룽고 광고화면(출처:네스프레소 한국 공식홈페이지)



룽고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취향에 따라 기존 세 가지 메뉴에서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리지니오 룽고가 새로 출시되었단 정보를 보고 주문페이지에 들어갔으나, 메뉴에 뜨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직접 문의하니, 물량 문제로 홈페이지 주문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주문은 가능하다고 했다. 재고량을 물으니 800박스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15박스 이상을 주문해야 배송비(3천원)가 무료라 15박스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15박스면 150개, 매일 하나씩 마실 경우, 다섯달 치다. 물론 아버지도 마시고 손님들도 마시고 하면 두세달이면 다 마시겠지만, 그래도 유통기한을 물었다. 친절한 상담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네스프레소는 유통기한이 없고,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기한으로 찍혀 나온다. 스위스에서 한국까지 들어오는데 보통 5개월이 걸려, 주문 후, 받게 되는 상품은 Best Date에서 4개월 정도 남아 있는 제품이라는 설명이었다.


네스프레소 캡슐 박스 옆면을 보면, Product date(제조일)와 Best date(맛있는 기간)로 나뉘어져 기재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보통 제조일과 맛있는 기간 차이는 1년 정도다. 아무리 진공 상태가 좋다고 하더라도, 분쇄된 원두가 1년 지나도 베스트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보통 원두는 볶은 날에서 2주 가량이 여러 서적과 전문가들이 말하는 베스트데이트다. 이 때가 항산화작용을 한다는 폴리페놀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이자 향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기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커피를 과일이라고 부른다.


베스트데이라 칭하는 날에서 유통으로만 반이 지나고 판매되기까지 또 몇 달이 지난 캡슐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참 비싸게도 판매된다. 스위스에서 한국까지 거리의 문제로 보긴 힘들 것 같다. 미국에서도 싸게 판매되니까. BMW나 벤츠 같은 수입차량이 한국에서 비싸게 판매되는 것 같은 관세의 문제일까? 글쎄다. 한미FTA가 진행 돼도, 미국산 과일과 와인의 가격은 내릴 줄 모른다. 결국은 마케팅과 유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제품들이 한국에서 더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여러 분석은 이미 각종 매체를 통해 나오는데, 역시나 답은 비싸야 잘 팔리는 한국시장의 문제인 것 같다. 제품의 품질보다 제품의 이미지를 사고파는 것이다. 시물라크르에 의한 시물라시옹의 세계에 우리는 본질 대신 덧입혀진 이미지를 소비한다. 네스프레소 역시 한국에서 그런 마케팅 전략을 세운 것 같다.


혹자는 네스프레소플래그십 스토어가 가로수길에 생긴 것을 보고 네스프레소가 한국에서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시물라시옹의 시대에, 소비자는 더욱 현명해져야 하는 것인가. 편리성을 차치하고 네스프레소가 정말 고품질의 커피인지, 다시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