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잘스페스티벌과 교과서속현대미술 전
세상에 좋은 작품들은 많지만 집에 두고 자주 보고 싶은 작품들은 그만큼 많지 않다.
지난 3월 1일, 카잘스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고양으로 향했다. 고양아람누리는 내가 참 좋아하는 공간이다. 주차도 넉넉하고 주변 환경도 여유로워 차와 사람 모두 붐비는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보다 더 선호한다.
2008년 대만에서 온 친구와 함께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전을 보러 간 것이 아람누리에 처음 간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2011년 3월 상뻬전을 보러 갔던 게 어느 덧 마지막이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다시 가게 된, 아람누리.
카잘스 페스티벌에 가는 김에 아람미술관도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봄 기획전 <교과서속현대미술>이 진행중이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월전미술관의 월전 장우성, 작년 제주에 갔을 때 보고 반한 변시지를 비롯, 김환기, 김기창, 박수근 등의 기라성 같은 20세기 초반의 작가들 뿐만 아니라, 육근병, 이이남 같은 최근 주목 받는 화가들의 작품까지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시된 것 같았다.
팜플렛의 빨간 옷은 입은 소녀는 이인성이 자신의 딸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총 세 section으로 나뉘어진 전시는 Section1. 자연을 통한 미술의 발견, Section2. 조형요소로 만나는 현대미술, Section3. 현대미술의 다양성으로 구성되어졌다. 입장료도 3천원으로 싸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었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처음 만난 작품은 운보의 <고양이>였다. 연이어 친일논란이 있어 왠지 꺼려지는, 하지만 작품은 정말 뛰어난 김환기의 <달둘>, <13-IV-73#311>이 눈에 들어왔다.
두번째 section에서는 이성자와 하인두, 하종현, 권영우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section3로 이동하니 육근병의 작품들이 맞이했다. 미디어와 조형미술이 만난 그의 작품들은 정말 세련됐다. 그 다음 전시된 이이남은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다. 특히 <매화달항아리>는 눈부셨다. 봄이 오면 나비가 날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는데, 나비도 눈도 그림 한 군데 자리잡은 시에 앉는다. 또 <신단발령만금강>은 정선이 36세에 그린 <단발령만금강>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인데, 문명의 발달이라기보단 환경파괴역사를 보는 것만 같다. 단아하게 아름다운 이이남 작품들 사이에 백남준의 작품도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아트숍에 들렸다. 아트숍에 들리는 건 언제나 즐겁다. 문신의 엽서와 책갈피를 사고 이인성의 엽서도 샀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미쳐 도록을 구입하지 못했다. 도록 구입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야겠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니까.
미술관을 나와 뒷편에 위치한 하이든홀로 향했다. 천원을 주고 프로그램북을 구입하고 입장했다. 생각보다 아담하지만 잘 지어진 홀이었다. 음향이 어떨지 기대됐다. 피아노는 역시나, Steinway & sons. 예고 시험볼 때, 쳐볼 기회가 있을 거라 신났는데. 원래 스타인웨이 쓰다 야마하 새모델로 막 바꿨다고 해서 결국 야마하를 쳤던 기억이. 물론 그 야마하도 소리 엄청 좋았긴 했다.
예당과 고양을 두고 고민했지만, 그래도 곡 수가 한 곡 더 많고, 아람누리를 좋아하고 해서 고양으로 오긴 했지만, 드보르작 피아노5중주 못 들은 건 아직도 아쉽다. 프라하에서 사 온 드보르작 CD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여전히 아쉽다.
첫 곡은 로시니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이중주였다. 다음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1번 G단조. 전 악장을 다 연주했는데, 피아노의 랄프 고토니와 바이올린의 제랄드 뿔레의 연주가 단연 돋보였다. 저 나이에도 저런 곡들을 연주하려면 도대체 하루에 몇 시간이나 연습하는 걸까. 이팔청춘 때에도 피아노 연습을 하루만 거르면 다음날 금새 손이 굳었는데 말이다. 뭐 이런 잡생각도 하면서 감탄하며 연주를 들었다.
세번째 곡은 프로코피예프 세르게이의 클라리넷, 현악사중주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히브리 주제에 의한 서곡. 세곡이 끝나고 20분간 인터미션.
인터미션 이후엔, 한국 카잘스 페스티벌 기획자인 류재준의 현악사중주,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피아졸라의 탱고가 연주됐다. 후반부는 좀 풀어주는 건지, 재밌는 곡들이긴 하지만 전반부가 워낙 좋아서 후반부는 느슨하게 감상하게 됐다.
마지막 앵콜곡은 카잘스의 <새들의 노래>였다. 고요하고 슬픈 멜로디가 연주되자, 작년 제천에서 본, 카잘스 다큐멘터리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스페인 독재에 반대하며 연주 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 시골에서 지내던 그의 모습이 어른거려 마음 한켠에 아렸다. 어릴 적, EMI에서 나온 하얀 바탕에 첼로를 안고 앉아 있는 카잘스 테이프는 지금 어디 있는지.
2011년부터 카잘스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시작됐는데,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다고 한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음악회다. 그의 저항정신이 묻어나는 곡들로 채워진다면 더 좋겠지만, 그리고 바흐의 곡도 연주된다면.
끝으로 71년 UN 총회 때 평화를 지킨 공로로 초대 받은 카잘스의 스피치와 그가 작곡하고 지휘한 <새들의 노래> 영상을 공유한다. 다큐멘터리에선 영상으로 봤는데 링크된 영상은 사진들이어서 좀 아쉽다. <새들의 노래>는 카탈로니아 민요로, 그의 어머니가 좋아한 곡이라고 한다.
"제 고향 카탈로니아에서는 새들도 '평화, 평화, 평화'라고 노래합니다,
Els ocells, quan són al cel, van cantant: "pau, pau, pau”
they sing: "Peace, Peace, Peace" (카잘스의 유엔 연설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