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준과 뭉어리진 베토벤
지난 일요일, KBS 클래식 FM을 듣는데, 작곡가 류재준 씨가 나왔다. 진행자는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가 누구냐고 물었고, 그는 '베토벤'이라고 대답했다. 류재준 씨는 베토벤 작품에 대하여 전무후무하다며 연신 찬사를 쏟아냈다.
카잘스페스티발 한국 총기획자인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이상한 동질감과 희열이 느껴졌다. 그는 현재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인데, 그가 나와 아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묘한 자부심이 들었던 게 아닐까.
내가 베토벤을 최고라고 칭하는 데에는 그의 작품을 연주할 때 갖게 되는 깊은 감동 때문이다. 무수한 천재 작곡가들이 존재하고, 또 위대한 곡들이 존재한다. 아마 나는 세상의 그런 위대한 곡들의 1% 정도도 다 연주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연주해본 곡들 중,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든, 무게와 뭉클함, 전율과 희열이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맺혀지는 곡은 베토벤이 유일하다.
요즘은 쇼팽 왈츠와 에뛰드, 슈베르트 소나타, 포레나 사티의 연주곡들 그리고 베토벤 소나타를 자주 치는데, 역시 베토벤 소나타가 갖고 있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 갖게 되는 상태를, 나는 '뭉어리', '뭉어리지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뭉어리는 뭉클함과 응어리의 조합어로, 가슴 속에 뭉클함이 끈적하게 남는 것이 뱉어도 나오지 않는 가래 같기 때문이다. 즉 묵직한 감흥이 응어리진 듯 맺혀진 상태를 뜻한다.
언제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고, 또 기회가 되면 연주도 해보고 싶다. 물론 그런 날을 대비해(영영 오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베토벤 소나타 연습에 정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