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2
고생 끝에 낙(樂)이 '언제나' 온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같은 고통의 반복이었다. 때로는 새벽에도 낮처럼 찬란한 소음이 창궐했다. 그날도 잠에서 깨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였다. 천장이 무너질 듯, 쿵 하고 아이들이 뛰고 있었다.
한 달 전쯤, 참다가 생각만 했던 일을 실행했다. 인터폰도, 문자도, 집 앞에서 누르는 벨에도 응답이 없었다. 관리실을 통해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을까. 아, 분노였지. 역시 분노의 에너지는 강하다. 늘 생각했던 그 일은, 집에서 나갈 때 혹은 들어올 때를 기다렸다가 만나는 일이었다. 평상시에도 꽤나 시끄럽게 다니기 때문에,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출근을 했고, 나 역시 잠을 거의 자지 못했기 때문에, 솟구친 분노를 도약대 삼아 뛰쳐 올라갔다. 아이들과 여자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내가 올라온 모습에 당황은커녕, 다짜고짜 욕을 시전했다. 속으로는 놀랐지만, 나 역시 침착하게 욕으로 맞대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경비아저씨가 곁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부터 올라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관리사무소에 새벽의 소동을 알렸다. 관리소장은 경비아저씨를 통해 올라가서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얼마 후에 윗집 가족이 나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아저씨는 아직 소식이 없고, 행여 오늘 새벽에도 소동을 피우면, 며칠을 잠을 못 자게 되는 상황이었다.
윗집 여자가 다짜고짜 욕을 했을 때, 당장 걱정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옆에서 이제 제법 큰 남자아이가 그 욕을 다 듣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뛰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볼 때면,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속으로는 미워도, 막상 마주치면 예쁜 게 아이들이니까. 그리고 이 상황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한참 욕을 하다 아이들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했다. 고성이 오가자 윗집 남자가 가세했다. 자기네는 그런 적이 없다, 내려가라, 또 뭐라고 막 얘기를 했는데, 양쪽에서 말을 하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가만히 계시던 경비아저씨가 남자를 막아섰다. 여자가 소리친다. 이사 가라고. 앞으로 더 크게 뛸 거라고.
집에 내려와, 아저씨께 감사하단 말을 하고, 이웃사이센터와 서울시 층간소음 상담실에 바로 상담을 신청했다. 그 동안 이웃사이센터에 상담을 신청했다 취소하기를 몇 번 했었는데, 윗집 태도에 잠시의 고민도 없이 바로 신청할 수 있었다. 며칠 전 기사를 통해 서울시 층간소음 상담실(http://housing.seoul.go.kr/site/main/content/sh04_040100)을 알게 되어 두 곳에 모두 신청했다.
이웃사이센터는 윗집에 우편공문을 보내고 공문에 회신을 하지 않거나 상담을 거절하면 그걸로 종료되는 시스템이다. 상담 건수가 많아서 진행속도도 비교적 느리다. 반면, 서울시 층간소음 상담실은 직원이 일주일에 이틀만 근무함에도, 진행 속도는 훨씬 빨랐다. 직원과 통화가 어렵고 진행 상황도 직접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웃사이센터 보다 먼저 관리사무소에 접촉이 이루어졌다.
서울시 층간소음 상담소의 진행절차는 1. 상담 신청 2. 관리소를 통한 윗집 접촉(이 부분이 이웃사이센터 보다 훨씬 효율을 높이는 것 같다. 우편 공문을 보내는 것보다 적극적 중재 노력이니까) 3. 상담원 방문이다. 윗집에서 상담에 응해서, 상담원과 시간 조율을 통해 직접 방문이 이루어졌다. 상담원은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었다. 먼저 우리 집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윗집으로 올라갔다. 윗집에서 한 10분 정도 머문 후, 다시 우리 집에 방문하였다.
윗집 여자는 내가 올라갔던 다다음날,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욕한 것에 대해 사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변명을 했다. 여자와 나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상황을 점검했고, 나는 그동안 휴대폰으로 찍어둔 층간소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더니, 동영상을 보고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고성능 마이크도 아니고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에는 거실 조명이 심하게 흔들거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뛰는 소리가 고스란히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상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아니기에, 1시간 넘게 뛰는 상황일 때, 참다못해 찍어둔 영상들이었다. 하지만 괜히 성깔 있는 윗집 여자와 마찰을 빚기 싫었기 때문에 언제 쓰일지는 모르지만 모아둔 영상들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먼저 욕을 했다는 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인지, 영상을 보고 매트를 깔겠다는 얘기를 했다.
상담원 분들이 얇은 매트 한 장을 거실에 깔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소음 일지를 적을 수 있는 A4 용지 한 장을 주었다. 일지를 적고, 필요하면 소음을 측정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측정 후의 일을 나는 알고 있다. 80이든 70이든 허용범위 이상의 데시벨이 나오면, 민사소송을 통해 배상금 정도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시간과 노력에 비해 액수도 적고,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거실 조명이 떨어질 듯 큰 소음은 줄었지만, 늦은 시간 침실에서 아이들이 뛰는 것은 여전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관리소에서 전화가 왔다. 윗집 공사를 할 예정인데, 인테리어 업자가 사인을 받으러 왔다며. 나에게 이사를 가라고 소리치던 윗집이 팔렸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사가라고 소리치던 윗집이, 이사를 간다!
4월에 윗집은 이사를 나갔다. 그리고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재택으로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던 그 시기에, 윗집은 한 달 가량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철거하는 날은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마루를 깔고, 타일을 붙이고, 화장실, 부엌 모든 공사 진행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정부가 지침을 내놓는데, 처음 2주만 공사를 한다더니 3주를 하고, 또 한 주를 더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때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꼭 지금이어야 하나.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이건 정부가 지침을 내려주면 좋겠다.
지옥 같은 한 달을 버티게 했던 건, 윗집이 아이가 없다는 것. 그렇다면 해피엔딩일까? 새로 이사 온 부부는, 발망치를 찍진 않지만, 다른 소음을 내고 있다. 가구 끄는 소리와 꼭 새벽 침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다는 것. 우리 집은 11시 전에 잠들기 때문에, 새벽마다 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새벽잠을 계속 설치고 있다. 귀마개를 해도, '끼-익'거리는 날카로운 소리는 귀마개를 뚫고 고막을 여지없이 휘갈긴다. 한 달 정도 참다가 관리소에 연락을 했다. 소장은 윗집이 자기들은 소음방지패드도 붙였고 조용하게 지내는데, 이상하다며, 오히려 이웃사이센터에 층간소음 측정을 의뢰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날 이후부터, 매일매일 일지를 적고 있다. 소음일지. 날짜와 정확한 시간, 들리는 소음의 형태를 기록 중이다. 이웃사이센터에서 어서 연락을 주면 좋겠다. 코로나 시기에 한 달 가량을 공사하면서, 업자는 음료수 한 병도 안 사들고 왔고, 당연히 이사 올 사람들은 찾아오지도 않았다. 내가 오히려 요구를 했다. 적어도 바로 아랫집에는 와서,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얼굴을 마주한 날, 그들의 손에는 5천 원짜리 초콜릿이 들려있었다. 하... 그 집 우편함에 도로 넣어둘까, 이런 걸 주는 건 오히려 기분 나쁘라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처치곤란 창고에 자리만 차지 중이다.
아파트 삶의 각박함. 그 정점에는 층간소음이 있다. 살아감의 피곤함으로 충분히 괴로운 인생에, 층간소음이라는 업이 더해진다면, 견딜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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